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다부동 전투 (문단 편집) ==== 225고지 점령전 ==== [[파일:하도봉 전투.png]] 한편 제15연대 1대대는 8월 5일에 송암동으로 진출하여 평송동 남쪽 무명고지를 점령하였다. 그리고 밤에는 제11연대의 제2대대를 엄호하다가 6일 06시에 적과 전투를 벌였는데 적이 사격과 수류탄으로 완강하게 버티자 항공으로 적진을 강타하여 공격을 재개하고 8부능선까지 육박(肉迫)하였다. 하지만 적의 완강한 저항으로 목표정상 40m 앞에서 결국 공격이 저지되었다. 또 8월 6일 11연대는 밤중을 이용한 적의 낙동강도하를 마주하게 되어 교전을 펼쳤고 항공기로 적을 폭격하였으나 적의 증원부대로 이를 극복하여 교전이 치열해졌다가 마침내 아래 3차례의 공격으로 225고지를 탈환하였다. >1차 공격: 이러한 파장공격으로 고전하는 제2대대를 엄호하던 임시배속된 제12연대 1대대는 06:00 제2대대가 철수하고 역습을 감행하였다. 이때 적은 대대가 돌격전을 펼쳐 올 때는 사격만 하다가, 아군이 사격준비를 하자 수류탄과 사격을 동시에 하여 아군은 퇴각할 수 밖에 없었다. > >1차 공격으로 적의 위치와 화력을 파악한 대대는 항공과 화력을 이용해 재반격하려는 작전을 세웠다. > >2차 공격: 08:00 적은 다시 7중대와 5중대의 진지를 향하여 돌파를 시도하여 수시간 교전이 지속되자, 제7중대는 항공지원와 포지원을 요청하여 약 30분 간 적진을 강타하였고 반격을 재개하는 즉시 8부능선까지 육박하였으나, 적의 수류탄과 사격으로 인하여 다시끔 저지되었다. > >2번의 걸친 반격이 실패로 끝나자, 대대는 먼저 3개중대는 후방으로 빼 재편성을 실시하고 대대수색대를 목표고지 우편으로 보내자 이 부근에 배치된 적은 약하다는 것을 알게 되고 적의 측방 침투로 적을 제압하려는 계획을 세웠다. > >이 사이, 제5중대와 제7중대는 끈질긴 공격으로 17:00에 74고지를 탈환하고 적을 격퇴했다. > >3차 공격: 작전을 이행하여 제3중대는 정면으로 적을 유인하고 나머지 2개중대로 하여금 적의 측방을 찔어 적을 무력화 시킨 후 22:30 드디어 225고지 정상을 탈취했는데, 공격을 시작한지 겨우 30분이었으며 이는 병력보단 전술이 더 우세하다는 것을 보여준다. > >이후 적은 다시 돌격을 반복하여 다시 이 고지를 빼앗으려 하였으나, 시체만을 남긴 채로 다시 후퇴하게 되고, 아군은 이 진지를 더욱 보강해 적의 침공에 대비하였다. >8월 6일 >야음(夜陰)을 이용하여 낙동강을 도하한 적은 낙동-해평동을 통하는 도로로 남하하였다. 점차 그 압력은 심하여 08:00 경 제7중대와 5중대의 진지 일부를 돌파하고자 하였으므로, 7중대는 적과 교전이 수시간 계속되자 항공과 포지원으로 많은 포탄과 폭격을 가하여 적에게 가한 타격이 많으나 후속부대로 하여금 침공을 극복함으로써 피아간의 격전은 치열하게 되어14:00 배속 제12연대 제3대대로 하여금 이 적을 공격하게 하여 △225에서 저항하는 적을 격퇴시켜 17:00 경 이 고지를 점령확보하였다. >---- >제1사단 11연대 해평 지구 전투상보 225고지에서의 혈전으로 인하여 아군 장교 4명, 병사 25명이 전사하고 장교 3명과 병사 113명이 부상하는 손실을 입었는데, 총 전투력의 35%가 날아간 셈이다. 또한 적은 160여명이 살상되었으므로 인명피해는 아군이 더 적은 것으로 추정되었다. 연대는 대대의 병력의 손실과 저하된 사기를 종합하여 영산에 대대를 배치하고 적의 우회를 막는 임무를 부여했는데, 대대에서는 비교적 손실이 가벼운 제2중대로 하여금 하달된 임무를 수행하도록 하였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